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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필요한 것만 남기자고 가족과 규칙을 정한다


    지난 10월 셋째 주 토요일, 우리 집 거실 바닥에 박스가 널려 있었다. 창밖은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메모지와 볼펜, 휴대전화로 캡처해 둔 이사업체의 조건표가 놓였다. 문서가 아니라 우리 생활에 맞는 기준을 먼저 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가족 회의를 열었다. 규칙 하나만 정하자고 제안했다. “필요한 것만 남기자.”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할머니에게 규칙을 설명했다. 짧게 말했다. 자주 쓰는 것, 계절별 보관용, 유품, 내어보낼 것 네 가지로 나누자고 했다. 기준은 사용 빈도와 보관 가능성으로 정했다. 사용 빈도가 낮더라도 소중한 물건은 예외로 두되, 보관 방식과 위치를 미리 정하자고 했다. 규칙을 문서로 적어 벽에 붙였다. 글씨는 큼직하게. 모두 한 번씩 읽게 했다.

    정리 분류 용어 정의
    ‘기부’는 소유권을 이전하여 타인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행위로, 개인의 불용품을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입니다. ‘유품’은 주로 고인의 물건으로 보존·기억을 위해 따로 관리하는 물품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분류 기준은 정리 작업에서 물건의 처리 방침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출처: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기부

    첫 작업은 의류였다. 옷장을 열고 30분씩 타이머를 돌렸다. 내가 아이들 옷을 분류했다. 남편은 책과 서류를 맡았다. 할머니는 찬장과 식기류를 정리했다. 각자 담당 구역을 정하니 속도가 달랐다. 토요일 오전에는 손이 잘 가지 않던 물건들이 오후가 되자 묶음으로 정리됐다. 박스에 ‘기부’, ‘보관’, ‘재활용’ 같은 표기를 직접 붙였다. 단어는 간단하게 썼다. 표기 하나로 박스의 용도가 나뉘었다.

    집을 정리하며 옷장, 찬장, 책과 옷가지, 상자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는 모습

    집 안 곳곳에 수납 기준을 세웠다. 주방 수납은 사용 동선 기준으로 재배치했다. 자주 쓰는 그릇은 아래 칸으로, 손이 덜 가는 조리도구는 위 칸으로 보냈다. 옷장은 계절별로 정리해 이불 수납함을 새로 들이지 않았다. 아이 장난감은 투명한 수납함 네 개에 주제별로 담았다. ‘블록’, ‘인형’, ‘퍼즐’, ‘외출용’ 식으로. 집안일이 줄어드는 구조가 생겼다.

    추가로 한 가지를 더 했다. 이사 전 여러 업체의 조건을 살펴볼 때, 물건 수가 줄어들면 선택지가 달라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박스 수가 줄어들자 이사 진행 방식이나 필요 인원이 바뀌었다. 문서로 받은 항목을 다시 펼쳐 보니 불필요한 옵션이 빠져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서비스 항목과 집 안에서 유지할 규칙이 분리됐다. 서비스 항목과 생활 규칙을 분리해 결정권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과는 분명했다. 이사 당일, 박스는 예상보다 적었다. 트럭을 기다리는 시간도 짧아졌다. 거실에 들어온 물건은 정해진 위치로 바로 갔다. 가족은 피곤했지만 말이 적어졌다. 할머니는 찬장 한 칸을 손보고는 손을 털었다. 아이들은 새로 정한 장난감 수납함을 열어보며 스스로 정리했다. 나는 상자마다 붙인 표기를 보며 다시 한 번 규칙을 확인했다. 작업의 효율과 심리적 안정이 동시에 개선되었다.

    가족이 이사 후 정리된 거실에서 각자 물건을 정리하는 라인 드로잉

    결국 이렇게 하게 되었다. 이사라는 큰 사건을 넘기고 난 뒤에도 우리는 주기적으로 수납 기준을 점검한다. 물건이 들어오면 먼저 메모하고, 한 달 동안 사용 빈도가 낮으면 내보내기로 했다. 식사 시간에는 그날의 정리 계획을 간단히 나눈다. 규칙을 벽에 붙여두는 일은 번거롭지만 실무에서 결정권을 분명히 했다. 규칙 덕분에 집은 전보다 덜 어수선해졌다. 작업이 반복되면서 가족의 역할 분담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그 변화가 곧 다음 이사 준비를 가볍게 만든다.